책사풍후가 과거에 쓴 라마동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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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 역사갤 2017.03.16 16: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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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비의 백잔 , 왜군 , 임나 , 비려에 대한 다채로운 연구 




요서에는 요서군 진제국 평주 군현을 관할하는 숙군성이 있는데




그 숙군성을 주위로 요서 모용선비를 위해 활동하는 백제 용병들 '백잔병'이 6개의 성을 가지고있었음. 




이들은 부여를 격파해 요서 지역으로 부여 왕족 부여인들을 질질 끌고와 부여 괴뢰국을 만들고 우문부 단부 평주자사 최비 고구려 연합군을 격파해 포로로 잡아 같은 용병으로 삼는등 


요서 라마동 지역에서 '라마동고분'이란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요서 모용선비의 강력한 군사집단이었는데 




모용황이 이들이 반란일으킬까봐 격파시켜서 라마동고분세력은 몰락했지만 여씨 호족세력으로 다시 모용선비 정치체제 하에 포함시켜주었음. 




이 '백잔병'이란 세력은 요서에도 활동하고 , 반도 한강 유역에서도 '백제군현'이란걸 세우고 활동하고 백제군현이란걸 한반도 남부에는 야마토를 귀국으로 섬기는 댓가로서 




'임나' '담로'란걸 만드는데 성공.






그건 광개토의 전쟁은 바로 모용씨를 군왕으로 옹립한 실질적인 요서군 진제국 평주군현(요동 현토 창려)의 지배자들인 백잔병과 백잔병을 돕는 중국낙랑인들과의 싸움이기 때문. 




[양직공도 백제국사재기]는 백잔병이란 말 대신 '낙랑'이라고 적고 중국 남조 사서들에선 '백제'라고 적고 , 자치통감에선 모용선비의 용병인 백제병사라 적고있음.






  삼국지 동이전에 보면 낙랑인을 '잔'이라 했고, 백잔의 잔이랑 한자가 똑같음. 마한 한강유역 백제인들 , 변한인들은 서기 3세기 후반에 중국 요동으로 피난가 귀부해 그곳에서 요동마한인 변한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백여개나 되는 가문들이 우르르 바다를 건너 몰려와서 백제伯濟에서 백제百濟라고 불리게됨. 3세기 말 진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의 산악지대를 점거하고 낙랑군 대방군을 격파해 포섭했는데 이미 3세기 후반부터 낙랑인 대방인들은 새로운 무역중심지인 요동으로 몰려왔었음. 하여튼 이리하여 요동으로 귀부한 마한백제인과 변한인이 


百濟란 새로운 해외교포로 등장하고 요동으로 온 낙랑 대방인들이 그들이랑 섞이고 모용선비가 이들을 용병으로 삼아 부여를 공격해 부여를 요서로 강제이사시키고. 




우문부 단부 평주자사 최비를


격파해 요서군 진평군을 장악하게되고 이 백잔병들과 요서 요동 낙랑 대방의 짱개사족士族들은 모용씨를 주군으로 모심. 




백잔병은 '요서 라마동 고분'이라는 고분세력의 주인들로서 모용씨를 도와 요서 진제국 평주군현 일대를 호령함. 그러다가 서기 346년 모용황한테 통수 맞고 멸망하고 백잔병들이 잡아두고있던 부여왕 여현(현은 서경에서 설왕 혹은 계왕으로 나옴. 현 설 계의 한자는 모두 같음)이 포로로 잡혔는데. 삼국사기에선 346년 계왕이 346년 갑자기 죽은걸로 나옴. 치적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346년 근초고가 즉위했는데 근초고 이전에 백제 왕들은 전부 우씨였지 여씨가 아니었고. 삼국사기 근초고본기에 보면 백제는 근초고 이전엔 나라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전혀 없었는데 근초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나옴.


근초고의 성이 여씨이고 중국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최초로 중국에 조공한 백제 왕은 여구(근초고)가 처음임.






그래서 온조 다루 기루 개루 초고 구수 사반 고이 책계 분서 비류 계왕 중 계왕 빼고는 전부 신화적인 왕들로서 그 실체가 확인되지않는데 그냥 마한 지역의 10~11명의 마한 신지들을 날조 계보로 묶어놓아 최초의 백제 왕인 근초고의 권위를 높여준거같음. 그러니까 근초고는 요서 요동에서 생겨난 '백제병' 혹은 '백잔병'이란 해적 집단이 모용황에게 격파되자 여씨란 성을 사칭하고 한강유역 백제 땅으로 와서 伯濟백제 토인들을 짓밟고 백제국百濟國이란 나라를 세우게 된걸로 보임.






이들은 마한을 학살해 복속시키고 전라도의 신미제국(침미다례)을 치고 가라7국과 신라를 깨부수기위해 안라 , 금관국 , 탁순을 '임나'라고 하는 새로운 해적연합으로 재편하고 이를 위해 야마토의 군사 원조가 필요했고 야마토가 더 발달한 군사문명으로 발전해야했기 때문에 안라 금관 탁순을 다그쳐서 임나 클랜에 가입시키고 임나 클랜의 지휘자는 목라근자 막고해가 맡음. 이것이 고구려에게 있어선 남방의 커다란 위협이었기때문에 사유가 먼저 선빵쳤으나 개좆패하고 평양까지 쭉쭉 밀리다 목 따이고 효수됨.






요서 지방의 모용선비는 전연 - 후연이란 나라로 '삼연문화'로서 요서에서 패권을 휘둘렀는데 이들을 열심히 돕던 여씨호족이 사료상으로 많이 나타남. 아마도 백잔병은 요서로 이주한 낙랑인 대방인들과 함께 여전히 요서에서 활동하며 고구려를 괴롭히고 바다 건너 백제를 무역적으로 돕는 그런 존재로서 계속 있었고 그래서 광개토에게 있어 모용선비는 적이 아니고 모용선비를 싸고도는 그 백잔병이란 존재가 문제였던거. 그래서 광개토비에는 연나라 모용선비가 등장하지않음.






그러니까 광개토의 전쟁은 시종일관 해적과의 전쟁이었음. 중국 요서 요동의 해적들과 동아시아해적연합왜구'임나'는 서로 손을 잡고 도우며 중국 군현과 고구려 마을을 약탈하거나 반도 남부의 나라들이 고구려의 속민이 되지않고 오히려 야마토의 신민이 되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악의 원흉들이었음. 이들은 백성의 '영락'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이었으므로 이들을 소탕하고 마침내는 동북부여의 읍루말갈족들까지 전부 복속시켜 만주와 한반도 모두에게서 공물들을 뜯어내어 이걸 중국에 고대로 조공바쳐 이득을 얻고 요동 현토 낙랑 대방에 대한 실효지배권을 얻는 그런 중국의 지방정권인 강력한 고씨지배층의 나라 고려를 만들어내는게 광개토의 꿈이었음.      






광개토의 비려 정벌은 무엇이냐? 비려는 내몽고 시란무렌하 상류에 사는 몽고족들인데 소금 바다에 살고있었음. 이 소금들이 요동군 현토군으로 운반되어 중국에 조공해야하는데  비려는 수백 텐트들을 가진 거대한 유목민족으로 소금들을 보내는 의무를 저버림. 그래서 열받은 광개토가 모용보에게 요동 대방 2국왕으로 책봉받고 모용선비가 보낸 장교들의 도움을 얻어 사마 장사 참군 등의 장교들을 설치하고 고구려군을 열심히 훈련시킨 후 출병해서 현토군 부산로란 대로를 지나가 비려를 때려패고 비려가 사로잡아간 현토군 고구려현 백성들을 안전히 현토군으로 데리고왔는데 돌아올때는 요동군 양평현 대로를 따라서옴.  이때는 광개토 초기로서 요동군 현토군을 지배하는 후연 태수들이 아직 고구려에게 귀화하기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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